이야기2013. 6. 18. 00:31



(20141029일 수정)


설령 누구의 손에 의한 것이든, 이 글 같은 불순한 부속물이 시디 안에 뒤섞여 있다는 것은 현명한 쿠루리의 리스너에게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은 그대로 무참히도 꾸깃꾸깃 뭉쳐져 쓰레기통으로 휙 던져질 만한 운명에 있다. 잘 만하면 이 종이도 지금 유행하는 리사이클에 편승하여, 재생지가 되는 것이 세상을 위한 일일 것이다. 다만 무엇이 정말로 세상을 위한 것인지, 명확히 시원스럽게 즉답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단순하지는 않지만.


바이런*은 <돈 주안Don Juan>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기술(記述)하지 않는다. 즉, 내가 기술을 피할 수 있다면, 나는 사고하지 않는다. 즉, 내가 사고를 접근시키지 않아두는 것이 가능하다면”이라고. 이것은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쿠루리 자신의 내면도 알아맞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이 어떤 운명에 다다를 것이라고 나는 써야 한다. 바라건대, 잘못 출발한 버스가 기적적으로 도착점에 연결되듯이.


주지하듯이 본작 《THE WORLD IS MINE》은 쿠루리의 통산 4번째 앨범이다. 밴드가 결성된 지 6년째에 발매된 새 앨범이다. 그렇다, 그들은 아직 20대 중반의 젊은 층에 속하는 나이이지만 밴드는 이제 6년째를 맞이했다. 쿠루리가 결성된 1996년은 하시모토 내각이 성립된 해이고, 이 해에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보급되었으며, 루즈삭스를 신은 소녀들[コギャル]이 거리에 넘쳐났다. 다음 해에는 사카키바라(酒鬼薔薇) 사건이 일어났고, 소비세가 5퍼센트로 인상되었다. 그들이 최초의 싱글 <東京>를 릴리스한 1998년에는 오부치 내각 성립에 실업률 4퍼센트 초과, 엔저, 이라크 공중폭격, 그리고 그들이 첫 앨범 《さよならストレンジャー》를 릴리스한 1999년은 도카이무라 JCO 임계 사고에 국기국가법(國基國家法), 도청법 등의 조직적 범죄대책법, 실업률은…… 아니, 이제 그만두자. 어쨌든 저녁 시간에 텔레비전을 틀면 가만히 있어도 차갑고 어두운 바람이 막 지어진 밥을 식게 할 듯한 시대에 쿠루리는, 그렇다, 이렇게 어떻게도 형용하기 어려운 록 밴드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평일 낮에 세타가야 선의 플랫폼에 걸터앉아 있던 소년처럼.


쿠루리의 음악적 전개는 주위의 예상을 완전히 비웃듯이, 어떤 의미에서는 변덕스럽게, 멋대로, 하지만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었다. 쿠루리의 멤버는 기본적으로 클래식이든 민속음악이든 펑크든 일렉트로니카든 힙합이든, 그것이 어떤 장르의 것이든 좋아하여 즐길 수 있다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 쿠루리의 음악을 듣고서 그들이 제임스 브라운이나 무디맨의 팬이라는 것을 끌어내는 것 같은 일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불가리아의 음악을 애청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망상에 관해서는 남다르게 뛰어난 다나카 소이치로*라도 무리일 것이다. 어쨌든 쿠루리에게는 어쩐지 록에 아주 질려하면서도 록을 열심히 추구한다는 모순적인 이면성이 있지만 그들의 너그러운 잡식성은 그런 모순을 감싸버리기에 충분하다. 《TEAM ROCK》은 그들의 그런 과감한 태도가 결실을 맺은 작품이다. 클럽 뮤직적인 수법과 포스트 록적인 수법 등을, 빌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것으로 한 앨범이다. 안정된 것을 거부하는 듯이, 이 밴드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계절이 바뀌는 지점이다. 1990년대적인 팝의 신화가 풍속화되어가는 때이다. 넓은 의미의 레이브 컬처의 공동체가 점차 해체되어, 사람은 지금 다시 개인으로 향하려하고 있는 때이다. 깊은 밤 술집의 카운터에서 주고받아질 듯한 알기 쉬운 성실함과 정직함과 사랑이, 광고탑처럼 구가(謳歌)되기 시작하고 있다. 혹은 난폭하게 말하자면, 반쯤 자포자기하여 이 세상을 부정하는 시절이 되고 있다. 혹은 정말로, 팝이 그런 싸구려 같은 개인적인 심정의 고백으로 영락하는 듯하다면, 그것은 표현으로서의 팝의 죽음과 다름없다. 간단히 개인에 회귀해버려서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체 없는 공동체에 미련이 남은 듯이 의거하고 있으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역사적 현재를 설명하시오”라고 재촉당해도, 이론정연하게 답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지만.


음악적으로도 가사에 관해서도, 쿠루리의 《TEAM ROCK》으로부터 본작 《THE WORLD IS MINE》에 걸쳐서 특히 현저해진, 반쯤 자조적이고 툭하면 무책임하며 위험한 센스는, 결정적인 팝의 신화가 한물 간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상상력의 선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쿠루리는 타자를 내치고 있는 듯하지만 분명히 호소하고 있으며, 헤메고 있는 듯하면서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즐기고 있는 듯도 보인다. 단지 사람 좋은 정직한 이에게는 익숙해지지 않을 역설적인 성실함이 있고, 또한 무엇보다도 이 밴드에게는 유희의 요소가 있다. 자칫 진지함에 향하고 싶어 하는 이 시대 팝의 물결에서,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고 싶어 하는 것이다. 큰 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신중히 거리를 가늠하면서도, 그들은 아직 우리가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어”라고 노래하고 있다. 쿠루리는 일관되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야말로 우리의 소재로서 어떤 멋진 무브먼트보다도 빛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렇게 들린다.


이 이상의 것을 쓰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 저 그릴 마커스*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뛰어난 예술은 언제나 위험하며, 언제나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다. 일단 그것을 세상 속에 내놓으면, 억제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은 온갖 방법으로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 적용시킨다”라고. 쿠루리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이 노래들을 어떻게 받아들여도 상관없다, 당신들의 인생에 적용시켜달라, 사랑하는 연인과, 사이좋은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 들어도 상관없다, 언뜻 우습고 넌센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한 곡조차도 우리는 힘껏 상상력을 구사하여 만들었다, 라고.



─ 노다 쓰토무 野田 努 20022 20



*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보통 사람과는 남다른 정열의 소유자로서 알려진 기세등등한 낭만주의의 영국 시인. 인용 출전은 그의 대표작이며 미완의 장편시로 알려진 <돈 주안>이지만, 사실 필자가 경애하며, 쿠루리의 사람을 깔보는 듯한 시치미 떼는 센스와 어쩐지 공통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영국의 현대 작가 윌 셀프의 소설 <수탉과 황소Cock and Bull>(와타나베 사치에 옮김)의 첫머리로부터 재인용.

* 다나카 소이치로 田中宗一朗
모두들 알고 계실 <snoozer>의 편집장. 애칭은 타나소우. 말할 필요도 없이 쿠루리의 광신적인, 감당할 수 없는 팬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글 속의 말투는 물론 찬사이다. 필자는 그와 같은 나이이며, 그의 애독자이기도 하고, 또한 서로 바지를 바꿔 입는 사이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상관없지만.

* 그릴 마커스 Greil Marcus
필자가 아주 많은 영향을 받은 미국의 음악평론가. 전성기는 1970년대이지만. 대략적으로 팝 평론에는 미국형과 영국형이 있다고 본다. 미국형은 사회배경과 음악을 관련짓는 방법, 영국형은 팬과 같은 시선으로 대상물을 접하려 하는 방법이 아닐까라고. 그리고 마커스는 바로 사회와 관련지으면서 팝을 이야기하는 그 선구자라고. 인용부는 그의 대표작이며 록 평론의 고전이기도 한 《미스터리 트레인Mystery Train》(미쓰이 도루 옮김)으로부터.






Posted by ar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