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2014. 12. 3. 20:15



올해 교토음악박람회의 홈페이지에 '음악박람회를 즐기는 법' 6번째 방법으로 올라온 글의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몇 달 전에 해놓았던 것인데, 다시 검토해서 올려야지 생각만 하고 계속 미루고 있었네요.

쿠루리의 음악이 '중성적'이라는 의견에 굉장히 공감하기도 하고, 재밌어보이는 글이라서 옮겨보았습니다.

예전에 <MUSICA>의 편집장이었던 시카노 아쓰시鹿野淳 씨의 글로, 원제는 くるりと女の子について입니다.

원문은 http://kyotoonpaku.net/2014/enjoy/vol6/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쿠루리는 정말 좋아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우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건 내가 외동아들에 남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학교 학생들에게 여자란 신과 같은 것으로서 어쩔 수 없이 애타게 좋아하는 존재이지만, 너무나 좋아하고 일상 속에 너무 없는 존재라서 막상 중요한 순간이 되면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크게 실수하거나 허탕을 치기 일쑤이다. 즉 너무나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면, 쿠루리는 어딘가 여자아이 같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키시다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토의 외모는 보기에 따라 여성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더욱이 팡팡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잘 알지 못하고, 그녀는 매우 소녀처럼 보이기도 하니 부끄러워서 좀처럼 함께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도 아니다.


쿠루리라는 음악이, 매우 여성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영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즐겁게 서양의 록을 들으며 많은 이야기를 한 세대의 중심에 있었기에, 그 음악이 어떤 가사를 담고 있는지보다 우선은 음악 자체의 분위기를 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쿠루리의 음악은 ‘냄새’나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마치 어쩐지 여성의 목덜미를 연상시키는 듯한, 비밀스럽고 육체적이며 게다가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이 ‘나의 쿠루리’인 것이다. 데뷔 곡인 <도쿄>는 그야말로 그런 느낌의 극치이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기타카마쿠라의 역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아름다운 목덜미를 한 여고생으로부터 오랜만에 편지를 받은 기분으로 ─ 그 곡 본래의 의미는 차치해두고 멋대로 ─ 들었던 적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가사는 아니지만, 쿠루리의 음악은 그러한 일본적인 요염함을 발산하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그 여성스러운 은밀한 부끄러움 같은 것이야말로, 쿠루리의 음악을 지금도 신선하게 들리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을 줄곧 최전선에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쿠루리가 왜 이렇게까지 수명이 긴 밴드로 계속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여러 가지 부분에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같은 시대에 음악 신을 수놓았던 밴드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 현재, 그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들의 음악성이 높다는 점도 있고, 다양한 나라의 루츠 뮤직에 대응할 수 있는 음악의 본질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다는 부분도 있다. 앨범마다 테마가 아주 선명하고 강렬할 만큼 변화해왔고, 비슷한 음악을 반복해서 만들지 않는데도 ‘쿠루리 컬러’가 제대로 청자들에게 뿌리 내려 있다는 점도 그들의 큰 매력이다.


하지만 그것뿐 아니라 ‘쿠루리는 바로 중성적이기에 훌륭하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키시다가 만드는 음악과 멜로디는 아주 유연하고, 나는 그로부터 여성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키시다의 음악에 대한 공격적인 자세는 매우 남성적이며,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기는 아주 어렵다. 사토의 베이스는 8비트를 연주할 때의 그루브감과 안정감을 볼 때도 뚜렷하게 매우 남성적인 터프한 것이지만, 그가 노이즈 매카트니에서 맡고 있는 역할과, 키시다와 오래도록 콤비를 이루어온 것을 보면 그 섬세함과 신중함 면에서 매우 여성적인 것을 느낀다. 이번 원고의 의뢰도 사토로부터 받았는데, 정말 정중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성이야말로 쿠루리를 수명이 긴 밴드로 만드는 것이며, 팡팡을 비롯한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은 수많은 훌륭한 아티스트와의 만남과 이별을 만들어내는 부분이기도 하며, 음악적으로 절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닐까? 실제로 이 밴드의 팬은 다른 밴드와 비해 남녀의 비율이 상당히 균등하다. 억지스러운 의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처럼 쿠루리의 곡에서 여성관을 발견하고, 그것에 매력을 느끼는 남성 청자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런 부분을 포함해, 쿠루리의 중성성(中性性), 즉 키시다와 사토라는 남성 두 사람의 안에 있는 여성적인 부분은 이 밴드의 매우 큰 무기인 것이다. (이하 생략)




Posted by aros